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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회 함평나비대축제기념 특별기획전 이태길 기증작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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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01. ~ 06. 30.

전시장소 : 제 1전시실

전시내용

제 17회 함평나비대축제기념 특별기획전 이태길 기증작품전 

 

2015. 05. 01. ~ 06. 30. 

제 1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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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 도록내지.jpg
 

 

전시에세이

 

 

 

나비축제에 날아든 또 다른 축제화 

 

 

함평군립미술관학예연구사

차 성 연​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착으로 작품을 기증하신 인송(仁松) 이태길(李泰吉)화백의 초대전시는 단순한 기증전을 논하기 전에 성장배경과 그의 미학성과 예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논의되어야 한다. 그는 1941년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 726번지에서 부친 이화범 선생과 모친 노월순 여사 사이에서 6남매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중등학교 입학을 위해 광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그는 유년시절을 함평의 아름다운 산야를 누비며 성장하였다. 부친께서는 광주에서 공직생활을 하시면서 당시 미술수업을 반대했던 여느 부모님과는 달리 아들의 그림공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으며 이는 이화백이 작품에 열중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모친 또한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1945년 해방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어렵게 생활하시면서도 강직함을 잃지 않으셨고 아들의 학업에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훗날 그가 작품에 열의를 다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59년 광주사범학교와 1966년 조선대학교를 졸업하였고 1974년 중앙대학교에서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광주사범학교에서 호남화단에서 추상화의 선두 주자인 강용운, 양수아 화백으로부터 수학하였으며 조선대학교 재학시절에는 호남 구상화단의 선두주자인 오지호, 임직순 화백으로부터 수학하였다. 대학원 시절에는 서울에 서 구상계열의 대가이신 장리석, 박영선 화백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화업을 지속하였다. 이러한 교육환경은 그의 작품이 추상형식과 구상의 절묘한 미학적 결합으로 재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광주와 서울에서 한국화단의 비중이 있는 분들에게서 수학한 그는 작품에 대한 미학적 이론과 완성도를 높이는데 초석이 되었으며 탄탄한 교육 배경은 그의 작품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 기증된 작품은 2000년부터 2013년 사이에 제작된 축제 시리즈의 작품들이다. 이화백은 2013년 함평군립미술관 초대전 인사말에서 ‘축제(祝祭)’의 연작에 대하여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축제(祝祭) 연작은....(중략)... 전통양식으로부터 새로운 현대성 소재를 창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명감(疏明感)을 갖게 하였고, 이론적이거나 형상적인 양면을 모두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가장 마음 깊이 중첩되었던 과제는 창조적 전통이란, 한나라의 또는 예술 전체로서의 역사성을 지니는 만큼 그 자체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고, 그 전통이 지배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민족양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와 민족을 대변할 수 있는 전통양식의 범주에서 현대성을 창출하려고 하였고, 좀 더 깊게 심취하다보니 인간의 혼에는 시각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깊고 큰 내감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의미 있는 형상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이렇듯 그는 민족적 전통양식으로부터 소재를 찾고 작품의 활로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통양식에 대한 단순한 재현자가 아니라 한국적 정서를 매개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그만의 창의적 표현 방법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경주하였던 것이다. 그는 1995년 ‘고구려, 발해 문화탐방’을 통하여 새로운 작품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만주지역과 일본 등 일련의 해외탐방을 통하여 선인들의 예술성에 전율을 몸소 느꼈고 그만의 창의적 작품 양식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정립시킬 수 있는 예술적 가치를 탐구하게 되었다.

 

그가 탐방을 시작한 1990년대는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물결이 들이닥치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자극제가 되었다. 세계화의 기치를 앞세워 무분별하게 밀려드는 개방으로 국적불명의 작품들이 범람하고 우리의 전통양식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양적이고 좀 더 한국적인 양식을 회화양식으로 표출하고자하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2008년부터 제작된 ‘축제’ 시리즈 작품에서 나타난다. 그에 있어 축제작품은 작업과정을 통하여 자각되는 인간의 정신성이다. 내재된 정신이 어떻게 형상화되느냐는 그가 항상 갈구하는 화두이자 그의 미학적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민족성을 되새기고 우리만의 신토불이(身土不二) 작품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그의 작업과정은 항상 진지하며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주고 있다. 인고의 세월과 그의 미학적 탐구가 곁들여 그의 작품에 예술성을 더욱 승화시켜 나가며 완숙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작품제작에 대한 열의뿐만 아니라 목우회 이사장, 광주시립미술관 관장, 구상미술단체인 ‘신작전’회를 창립하고 이끌면서 문화행정에 대한 남다른 의욕과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화단의 원로로서 한국화단의 장래를 염려하고 발전시키고자하는 그의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기증작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선별된 수작들이다. 그의 바람은 이번 기증작을 통하여 함평군립미술관의 소장 작품이 더욱 풍성해지고 미술관의 위상을 높아지길 바라고 있다. 더 나아가 미술관이 세계적인 명소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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